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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언론] 라 나시온, 한국대중문화 특집 전문 번역문

  • 게시일2013.12.13.
  • 조회수200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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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정상에서, 한국이 서양을 정복하러 나서다


 

라나시온,
2013.12.08자


 


아시아의 거인 한국은 국제영화제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 전염성이 강한 K-POP과 드라마로 세계를 매료시키려 한다.

 

나탈리아 트르젠코 기

 

서울 - 30시간의 비행이다. 28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이 공항, 저 공항에서비행기를 갈아타고 시계를 12시간 앞당겨 놓으며 몸과 마음을 적응시켜야 했기에 좀 헷갈렸을 수도 있다. 30시간 이라는 숫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 매력적인 영화, 수 백 만의 관중을 끌어 모으는 K-팝, 인상적인 텔레비전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만, 아시아 이외에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의 수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대척점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 그리고 극동.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거의 2만 킬로 미터, 12시간이 빠른 곳, 역동적이고 강렬하고 빠르고 너무나 아름다운 서울에서의 보물찾기는 한류의 성공과 팽창 뒤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 찾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름하야 한류 속으로 나는 집어던져 졌다.

 

첫째 날, 세상 반대쪽의 레드카펫

 

모든 빨간 카펫은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종상 시상식의 빨간 카펫은 다른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나머지 다른 곳들에서처럼 팬들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들을 기다린다. 그렇지만 7개월간 상영되고, 82백만 달러의 수입을 거둔 ‘7번방의 선물’의 주인공인 류성룡이 도착했을 때 청중들의 고함소리가 심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관객의 함성을 압도한다. 유명가수도 초대된다. 서인국은 슈퍼스타 K의 첫 우승자가 된 뒤 한 해 동안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중의 하나인 ‘노브레싱’에 출연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는 예외적이 아니며, 거의 일반화 된 것이다,

 

다시 첫째 날, 슈퍼스타 K5, 또는 어떻게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가에 관해

 

프로그램은 밤 11시쯤 시작된다. 경희대의 멋진 강당에서 열렸는데 빈자석이 하나도 없었다. 결승전의 흥분이 고조되었다. 나는 출연자도, 콩쿠르의 규칙에 대해서도 몰랐지만, 그 대회의 폭발적 열기에 감염되었다. 4명의 결선 진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팬들은 그냥 글씨가 씌여진 피켓이 아니라, 네온싸인을 들고 있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K-팝 무대에 진출할 것이고, 이는 아시아 전체, 아니 전 세계에 유명세를 떨칠 수 있는 관문이 될 것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자들은 명성을 얻을 것이오, 그렇지 못한 자들은 무명으로 남을 것이다.

 

둘째 날, 강남 스타일로 저녁 식사를 하며

 

수많은 수입차들, 유명 성형외과들,,,지금 강남에 있다. 싸이의 노래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지역. K-팝스타들은 한국어를 모르는 수백만의 외국인들이 그들의 노래와 춤을 따라하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에 우리가 알려졌나요?”라고 ‘티아라’의 6명의 가수 멤버들이 마치 합창을 하듯 내게 묻는다. 그들에게 “네”라고 대답하고는, “아르헨티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뜨고 있다”고 설명하자, 그녀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토요일 밤이다. 밖에는 그들을 연습실로 데려가려고 창문을 까맣게 코팅한 큰 승합차가 기다린다.

 

“오디션을 많이 봤었는데 다 떨어졌어요. 저의 마지막 기회였던 이 그룹에 합격했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그때부터 집에도 못 들어 가고, 동료들과 합숙해야했지만요. 3년 동안 언젠가 데뷔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이 연습만 했어요.”라고 멤버인 소연이 말한다. 그녀는 26살이고, 이젠 K-팝 세계의 베테랑이 되었다. 동료들도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축구선수들이 너무 늦지 않게 팀에 뽑혀야하 듯이 성공은 그녀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찾아왔다. 그래서 성공이 찾아왔을 때 그녀들은 크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리허설은 토요일 날 저녁의 강남에서.

 

셋째 날, 산 속의 스튜디오

 

서울에서 40 킬로미터 떨어진 용인시는 몇 년 전까지 놀이공원과 조선시대(1392-1910)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속촌으로 유명했었다. 60세가 넘어 보이는 한 중국남성은 귀족이나 농부의 집들을 재현해 놓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대신 이 남성은 드라마 촬영장인 '용인 MBC 드라미아'에서 미니 시리즈인 '아랑 사또전'의 세팅장 사진을 계속 찍고 있었다. 거대한 촬영장인 드라미아에서 관광객들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는 전장의 장수로 분장한 엑스트라들과 섞여 있다. 이 중국인은 여기서 궁궐을 관람하고 16세기의 시장을 걸어 다닌다. “조용히 해 주세요. 지금 촬영 중입니다.”라는 표지만이 시간 여행의 환상을 깨운다.

 

넷째 날, 신발 없는 방송 촬영

 

몇 번의 리허설을 마친 후에 본 촬영에 들어간다. 드라마속의 중류층과 부자들의 집을 배경으로 찍는다. 상류층 사람들의 집에는 거대한 항아리, 육중한 의자, 그리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주인공들이 있다. 그러나 복사 뼈까지만 우아하다. 집에 들어 갈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드라마 주인공들은 실내화를 신고 연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새벽의 시청자들을 위해 연기한다. 드라마 방송 시간대는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 50분에 방영한다. “주부들은 집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은 테블릿이나 휴대폰으로 시청하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당 PD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다섯째 날, 영화 촬영장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로 여행한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는 너무나 멋진 도시 부산으로 옮겨갔다. 풍부한 해변과 절벽이 있는 곳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작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감탄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영화들을 함께 볼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얼마 전 폐막되었다. “여름이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영화관으로 몰린다.”고 한국 영화홍보를 맡고 있는 ‘우디김’이 농담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의 여름이 숨 막힌다고 하더라도 왜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극장에 자주 가는 지에 대해 설명할 길은 없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국영화 점유률이 높다. 6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위원들은 팝과 드라마의 인기가 한국영화의 점유률을 높이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고 설명하며, 자신들의 새로운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건물을 소개한다, 새 건물 맞은 편에는 부산 국제영화제 전용 홀과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 된 신세계 백화점이 있다.

 

여섯째 날, 드라마의 왕들

 

공영방송인 KBS 입구의 벽은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의자에 놓여 있는 각본은 지금 12개의 드라마가 제작 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제작진이나 출연진의 휴가로 촬영이 멈추는 법이 없다. 충실하다. "우리는 아시아의 리더입니다. 90 년대부터 중국에 미니 시리즈를 수출한 덕분으로 한류가 점화되었고, 지금은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프라임 타임에 일주일에 두 번 방송되는 미니 시리즈를 담당하는 이강현 드라마 국장은 자부심이 가득하게 이야기한다. 드라마의 각 회당 제작비용이 50만 달러 가까이 소요된다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 추리극, 판타지와 역사물 : 애청자들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 할 장르란 없다. 드라마 보기를 갈망하는 목마른 팬 층은 항상 존재한다.

 

일곱째 날, 영화의도시

 

일정이 반복된다. 리허설처럼 내가 홍상수, 봉준호, 박찬욱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분명하게 말한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인 전부가 복수에 미쳐있고, 실수투성이, 바람둥이, 그리고 술주정뱅이들은 아닙니다. 영화의 대성공은 양면의 칼날을 지니고 있나 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관광공사는‘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에게 업무 하나를 부탁했다. 일반 시민들인 아마추어 영화 작가들이 만들면, 박찬욱 감독이 이를 편집하게 된다. 그 결과물에는 ‘서울, 우리의 영화’라는 제목이 붙을 것이다.

 

여덟째 날, 다시 K-팝 이야기로

 

복도에 아이돌이 있다. 화장실에서도 보인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순위에 오르느냐, 아니면 사라지느냐를 결정해 줄 청중들의 투표를 기다린다.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M 카운트다운 음악차트 공개방송은 한국 외에도 일본, 중국, 베트남, 미국 등 10개 이상의 채널에서 동시에 생방송을 한다. K-팝가수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려면 서야 할 필수적인 무대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분홍색으로 차려 입은 '베스티'의 4명의 신인들은 카메라 앵글 가까이에 모여 들며, 내일 그들의 사진이 유명 홈페이지에 실리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 시즌의 ‘김우빈’, ‘박형식’처럼 그들의 사진도 벽에 붙여질 것이다. 이 탤런트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흥행 최고의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고, 광고계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가수로서도 활동한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 K-팝 가수로서도 더 인기를 끌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매력적이고 강력한 한류, 아무리 두 번에 걸쳐 30 시간의 비행을 해야 하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야 방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끝)


 


드라마의 또 다른 황금시대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각본이 아주 잘 짜여지고, 연기와 연출이 훌륭하지만...미드가 아니고, 영국 드라마도 아니고, 북유럽 드라마도 아니다. 한국 드라마는 한국적이지만, 전 세계인이 좋아할 만한 미니 시리즈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만 보았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 방영되고 있다. 문화대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또는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생활을 보여 주는 전파자이다. 왜냐하면 이미 수 백만명이 넘는 한국 드라마의 광팬들은 열렬하게 시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처음으로 한국 시트콤이 시작되었을 때는 해외 판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수용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한국 드라마에 중독된 사람들이 생겨났죠. 그 광팬들은 드라마를 사랑하고, 그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국까지 사랑했죠. 시청률이 치솟자 덩달아 그 방송사들의 광고수익이 올라갔어요. 그러자 그 방송사는 일주일에 한 번 대신, 두 번을 방영하게 되었죠. 한국 드라마가 보통 한 회당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광고가 많이 들어가면 더 많이 걸리기도 합니다.”MBC의 여러 미니 시리즈를 성공시킨 김민식 PD가 설명한다.

 

그는 아주 열정적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방송국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100번도 더 되풀이 된 소재들에서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한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월요일 날 방송하면, 경쟁사에서는 화요일 날 방송해요. 경쟁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세 개의 지상파 방송사에서 한 꺼번에 내보내요. 하여튼 시청자를 사로 잡으려면 처음부터 아주 눈에 띄어야해요. 제작 과정과 새로운 컨셉을 선 보여야 하죠. 사람들을 처음부터 빠져들게 만들어야 해요. 그러지 못하면 금방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죠. 입소문으로는 안돼요. 5회부터 보기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국시장은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드라마, 음악, 영화분야에서 시청자들을 단 번에 사로 잡을 수 있도록 중독성이 강하게 만들어야 팬들을 확보할 수 있어요.”라고 김민식 PD는 세부적으로 이야기 해 준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에게 감사드려야 해요. 세계 왕조역사상 유일하게 조선왕조는 500년을 지속했어요.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죠. 그 책에는 여러사건과 사람들이 나와요. 예를들면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사극중의 하나인 ‘대장금’은 91개국에서 방송 되었어요. 대장금은 첫 번째로「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여자 이름이예요. 한국은 드라 마각본에 강한데, 모두 조상의 덕이죠”라며 한국이 드라마 각본에 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텔레 노벨라에 올인하는 Direc-TV의 ‘빠시오네스’ 채널에 나오는 간헐적인 소수의 드라마 외에는 아르헨티나 드라마는 서사성이강하지 못하다. 라틴 아메리카를 향한 한국 방송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아르헨티나에서도 서사성이 강한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전적으로 정길화 전 MBC 브라질 상파울루 특파원 겸 지사장의 몫이었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지구상의 반대쪽에서 방영되게 만들기 위해 상파울루에 사무소를 열었다. 임무가 너무 힘들었다. “상파울루 지사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는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어요.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칠레와 페루에서는 한국의 미니 시리즈가 방영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한국처럼 태평양 연안에 면한 나라들에서는 성공했어요. 지정학적 위치 외에도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보다는 드라마 제작 역량이 떨어지는 나라들이기도 하구요.”그는 2년간의 상파울루 근무를 마치고 많은 숙제들을 안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남은 숙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뛰어난 한국의 미니시리즈를 통해 한국문화를 전파하려고 했던 그 시도를 저지했던 시장(아르헨티나, 브라질)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도를 저지하지 말았어야 했다. (끝)